광주, 그리고 친가 친척들과의 만남.

1.
2008년 5월 11일, 할아버지 생신을 축하드리러, 솔직히 목적은 친척들의 용돈이 주 목적임을 고백한다. 물론 그렇다고 장손의 책임도 있다는 것도 함께말이다. 오랜만에 할아버지 슬하의 네 남매가 모여있는 모습은 보기 좋았고, 사촌동생들의 재잘거림도 보기 좋았다. asd가 있다는 가장 막내인 사촌동생 수아도 cyanosis도 없이 건강히 자라는 것을 보니 생명력이라는 것은 강하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2.
나의 큰고모, 그리고 큰고모부는 소위 말하는 386세대의 운동권이었다. 전남대 총여학생회 회장과 전남대 상대 학생회장 커플인 그들은 지금은 심정적으로만 진보세력을 지지하는 사회인이 되어있었다. 항상 그랬다, 언제나 큰고모는 정치쪽에서의 나에게는 가장 큰 사부이자 도우미였다. 큰고모는 자신이 활동했던 시기를 말해주었고, 왜 '민주'가 필요했는지를 역설했으며, '진보'의 가치는 언제나 유효하다는 것도 알려주신 정치에서의 스승.

그리고 오늘은 새로운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여태까지 나의 아버지가 80년 5월 그곳에서 집에서 숨어지내셨다고만 생각했지만,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작은고모(12살 차이나는 아버지의 막내동생)는 아버지의 과거를 다시금 알려주었다.

"너희 아버지, 그때 5월에 대학교 교수님들 뒤의 행렬에 있었어. 그때 나도 거리에 나갔었는데, 큰오빠(나의 아버지)는 나를 보자마자 목마를 태우고 계속 그 거리를 행진하셨지. 집안에 숨어지내실 때도 한사코 눈물을 흘리셨단다."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신 것도 기억난다.

"그때 정말 굉장했어. 시위대들 돌던지고... 그러면 군인들이 와서 잡아서 때리고... 그때 죽은 전남대 총학생회장, 정말 멋있는 오빠였는데. 그 선배, 엄마 밥도 한번 사주고 그랬었단다."

그런 것이었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의 말림은 어쩌면 그때 생긴, 어쩌면 그때의 광주 사람들에게 생긴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후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부모님은 나에게만큼은 그러한 유전자를 물려주는 것을 반대하지 않으셨을까 싶다.

그렇다. 아빠와 엄마는 소위 말하는 386세대의 첫번째 사람들이었다.

3.
큰고모는 아버지를 설득하여 주셨다. 이런 것에 정말 지금의 대학생들이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이때가 아니면 이런 생각을 언제 해 볼 수 있느냐고 말이다. 내 진보의 열정은, 그리하여, 아버지에게 전달되었고,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감사합니다.
약속드린대로, 생활 속에서는 지극히 현실주의자로, 하지만 가슴속에서는 진보의 열정이 식지 않는 그런 아들이 되겠습니다.
실망시키는 모습도 걱정시켜드리는 일도 없다는 것도 함께 다짐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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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랑박군 | 2008/05/11 23:21 | 3rd diary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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