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별짓기.

"먼저 다양한 문화 실천(또는 그에 상응하는 의견)과 학력자본(학위에 의해 측정된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출신계급(아버지의 직업에 의해 평가된다) 간에는 극히 밀접한 연관관계가 존재한다. 둘째 학력자본의 수준이 동일한 경우 최고로 정통적인 문화 영역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실천이나 선호의 설명체계에서 출신계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게 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p.39)
"왜냐하면 취향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모든 것, 즉 인간과 사물 그리고 인간이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할 수 있는 모든 것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스스로를 구분하며, 다른 사람들에 의해 구분된다." (p.114)
"지배 분파들은 항상 피지배분파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진지한 것과 경박한 것, 책임감과 무책임감,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 현실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 등과 같은 대립관계를 이용해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p.183)
"쇠락중인 개인이나 집단들이 있는데, ...... 왜냐하면 그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존재를 부회시켜 줄 수 있는 구질서의 복귀밖에는 미래로부터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p.215)
"즉 상이한 종류의 자본간의 전환율은 이러저러한 자본과 관련해 서로 다른 힘과 특권을 행사하고 있는 상이한 계급분파들간의 투쟁의 기본 목표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말이다." (p.243)
"이런 계급분파의 출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지배양식의 변화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억압 대신에 유혹을, 공권력 대신에 공적 관계를, 권위 대신에 선전을, 강경수단 대신에 온건한 수단을 내세움으로써, 규범을 주입하기보다는 욕구를 부과함으로써 피지배계급의 상징적 통합을 추구하는 지배양식의 변화 말이다." (p.282)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입증하려고 노력해 왔다. 첫째, 지배계급은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공간을 구성하는데, 그 공간의 구조는 지배계급 구성원들 간에 다양한 종류의 자본이 분포되는 것에 의해 정의된다. 각각의 분파는 아비투스의 매개를 통해 일정한 생활양식이 조응하는 이러한 분포의 일정한 배열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것이다. 둘째, 분파들간의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의 분포는 대칭적으로, 그리고 역으로 구조화된다. 셋째, 다양한 상속자본의 구조들은 사회적 궤적과 함께, 아비투스와 실천의 모든 영역에서 아비투스가 생산하는 체계적인 선택들을 결정한다. 보통 미학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그러한 선택들은 아비투스의 하나의 차원이 되는 것이다. 만약 이상의 것들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생활양식의 공간, 즉 다양한 성향의 체계들이 표현되는 다양한 특성들의 체계에서 이러한 구조들을 재발견할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p.478)
"문화자본의 보증된 형태인 학력자본과 경제자본과의 괴리는 의심할 여지없이 교수층이 사회질서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향을 이루는 기초들 중 하나인데, ......" (p.525)
"상승하는 쁘띠 부르주아의 전 생활은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열망을 투사하는 자식을 통해, 대리에 의해서 알게 될 뿐인 미래에 대한 예상이다. 아들을 위해 그가 꾸는 미래란 꿈이 그의 현재를 갉아먹는다." (p.641)
"윤리적 구제의 새로운 교리를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에서 그 직업적, 개인적 구제를 기대하는 신흥 쁘띠 부르주아지는 생활양식과 관련된 모든 것 특히 가정생활과 소비행동, 남녀간 세대간의 관계, 가족 및 그 가치관의 재생산을 둘러싼 투쟁에서 전위적 역할을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 (p.665)
"현대적 도덕은 '정상적인 것 normal'이라는 그럴듯한 실증적 정의를 정상성 normalite이라는 절대적 요청으로 변용하고, 그 이론적 도덕으로 말해지는 의무로서의 오르가즘을 킨제이류의 잘못된 풍습과학의 발견에 토대하며, 그 결과 대부분의 사회에서 집단적 오인이 통하는 최후의 장소인 성적 교환의 영역에 '기브 앤 테이크'라는 가공할 합리적 계산의 원리를 도입하는 것이다." (p.668)
"과시적이라 불리는 많은 지출형태는 결코 낭비적인 것이 아니고, 어떤 생활양식(약혼식의 파티 같은 것)에는 필요한 요소 이상으로 종종 사회관계자본을 축적하는 기회를 부여하는 훌륭한 투자가 된다." (p.682)
"필요성에 대한 종속은 ...... 민중계급 사람들로 하여금 실용적이고 기능주의적인 '미학'에 경도되게 하는데, 필요성에의 종속은 일상생활의 모든 선택의 원리이며, 본래적 의미에서의 미적인 의도를 '미친 짓거리'라고 배제하게 하는 생활기술의 원리이기도 하다." (p.685)
"피지배계급에게는 다음의 두 가지 선택만이 가능하다. 하나는 자기 자신과 소속집단에의 충실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정체성에 관한 통제를 집단적으로 획득하려는 야심에 정반대되는 것으로 지배자적 이상에 동화하려는 개인적인 노력이다." (p.697-99)
"'대중'의 문화적 생산물에 대한 관계를 재생산하고 재활성화하며 강화하는 것은 ...... 노동자의 세계경험의 근본에 있는 사회적 관계, 즉 노동 및 노동의 생산물인 자기의 일 opus proprium을, 노동자에 대해 타자의 일(소외된 노동) opus alienum로 제시하는 사회적 관계이다." (p.701)
"정치적 '방침'의 의식적이고 거의 강제된 체계성과, 에토스의 무의식적 원리로부터 생겨난 실천과 판단의 '즉자적' 체계성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 적절한 성향이 없는 정치의식이 비현실적이고 불확실한 것이라면, 명확한 의식이 없는 성향은 그 자체로 불투명하고, 그 결과 잘못된 승인에 입각해서 항상 본래적 목적 이외의 목적에 유용당하기 쉽다." (p.762-63)
"즉 정치의 본질적 문제는 경험으로부터 담론으로, 말로 형성되지 않은 에토스로부터 명확히 구성되고 구성하는 힘을 가진 로고스로, 막연한 계급감각으로부터 이 질서에 대한 의식적인 파악, 즉 명확한 담론으로의 파악으로 전환하는 문제이다." (p.825)
"피지배계급의 사람들이 자기모순적 담론을, 즉 그들의 실천의 의미와 객관적 존재조건이 모순되는 담론을 진술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자기 나람의 담론의생산수단의 소유권을 보유하지 못한 채, 즉 그들의 정치언어를 소유하지 못한 채 정치를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p.827)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통해서 사회질서는 사람들의 마음에 점진적으로 새겨지게 된다. 즉 상이한 존재조건과 연관되어 있는 차별화되고 차별화하는 조건화를 통해서, 또한 사회구조 및 그것이 행사하는 구조화작용의 힘을 지배하는 배제, 포함, 결합을 통하여, 대상, 제도, 언어에 새겨져 있는 모든 종류의 위계와 분류를 통하여 사회질서가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끝으로 가족, 학교제도 등과 같이 특별히 이러한 목적을 위해 고안된 제도들에 의해 부과되거나 혹은 일상생활의 만남과 상호작용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판단, 결정, 분류, 경고 등을 통하여 사회질서가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지게 된다. 사회적 분할은 분할원리가 되며 사회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조직한다." (p.844)
"계급에의 귀속판단에 토대하는 어떤 사회공간의 실천감각을 흠잡기는 매우 쉽다. 응답자의 자기모순을, 계급의 존재를 부정하는 논거로 사용하는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감각'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자신들이 그 감각을 작동하게 만든 인위적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낼 뿐이다." (p.848)
"한 계급은 존재상태 etre에 의해서 정의되는 동시에 그것의 지각상태 etre-percu에 의해 정의되고, 또한 생산관계에서의 그 위치에 의해 정의되는 동시에 그 소비행동에 의해서도 정의된다." (p.867)
"즉 분류투쟁에서의 위치는 계급구조에서의 위치에 따라 결정되고, 사회적 주체 즉 사회세계에 대한 자신들의 사고의 한계를 결정하는 것, 즉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환상을 파악하기에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지 않은 지식인을 위시한 사회적 주체들은, 확실히 그들이 자신의 위치에 대해 타인에게 품게 하고, 또한 자신이 품는 것의 표상 속에서 만크밍나 '자기 두뇌의 한계'를 넘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p.868)

- 삐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 최종철 역, <구별짓기 La Distinction : Critique sociale du jugement>, 1979. (한국어판 : 새물결, 1996)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두 권, 9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3주가 걸려서 겨우 다 읽었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에는 호기롭게 시작해서 일주일 안에 다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다. 부르디외 특유의 긴 문장과 난해한 단어 선택으로 인해서 책읽기는 가다서다를 반복하였고, 하루에 백 페이지 이상 읽기가 버거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건 좋은 선택이었다. 어떻게 계급을 다른 측면으로 정의할 수도 있는가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었고, 왜 하층 계급이 보수지향적인 투표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이유도 언급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 그대로를 한국사회에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계급의 구분과 그에 따른 연구는 계속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부르디외는 여론조사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있다. 여론조사의 질문과 각 문항들로 인해서 답변하는 사람 스스로의 의견이 무시되면서 몇 개 중 하나의 답변만을 강요하고 수집한다. 그리고 그 답변이 많은 구성원들의 답변으로 둔갑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부르디외의 통찰력이 드러나는 것 같다.
역자의 후기 중 인상깊은 부분이 있어 옮겨보고자 한다. "아비투스는 개인적이거나 그 자체로 완벽하게 행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행위자의 내부에서 작동하여 행위자들로 하여금 예측되지 않고 항상 변동하는 상황에서의 선택을 결정하게 하는 전략들의 발생원리이다." (p.978)

by 박군 | 2010/01/30 20:56 | review | 트랙백 | 덧글(0)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나르치스는 친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골드문트, 진작에 말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네. ...... 오늘은 내가 자네를 얼마나 좋아하며, 자네가 늘 나한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자네가 내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했는지 털어놓아야겠네. ...... 그런데도 내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면 그건 자네 덕분일세. 자네만은 사랑할 수 있었으니까. 사람들 가운데 오직 자네만을 말일세. 이게 나한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네는 어림도 못할걸세. 그건 사막에서 솟구치는 샘물이요, 황무지에서 꽃을 피우는 나무와 같은 걸세. 나의 마음이 황폐하게 메마르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이 닿을 수 있는 자리 하나가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자네 덕분일세."  ...... "......나 역시 늘 자네를 사랑했지. 나르치스, 내 인생의 절반은 자네한테 잘 보이려고 했던 일들이었네. 자네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니까. 그런데 이제 자네는 나를 사랑했다고 말했네. 나한테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바로 이 순간에, 방랑도 자유도, 세상도 여자들도 모두 나를 곤경에 버려두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 말일세. 자네의 말을 받아들이겠네. 고맙네."" (p.469-470)
- 헤르만 헤세 Herman Hesse,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Narziss und Goldmund>, 1930. (한국어판 : 민음사, 2002)

사실 헤세의 글은 잘 읽지 않는 편이었다. 어렸을 적, <수레바퀴 아래서>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 다음 읽었던 <데미안>은 너무 어려웠다고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읽는 책이었는데, 첫 번째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골랐다. 생각보다 잘 읽혔고, 헤세의 성장기를 오롯이 옆에서 지켜본 느낌이다.
여기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사랑은 동성애의 '성애', 그것이 아닌 지고의 느낌, 서로를 생각하는 아끼는 행동, 믿음, 지지 등이 결합한 이상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함께였으나 함께이지 못하는 운명임을 알았기에, 항상 먼 발치에서 서로를 생각하는 그리움의 성격도 아울러 내포하고 있다.
두 인물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가를 상상해본다. 그는 참 어질고 싫은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조용하고 차분하면서도 위트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by 박군 | 2010/01/12 01:30 | review | 트랙백 | 덧글(0)

평등해야 건강하다.

"이 책에서 우리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불평등의 격차는 작더라도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모슨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어떤 원칙을 추상적으로 약속함으로써 엄청난 공평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 공동체에 대한 참여의 수준이 높고, 사회적 자본이 높으며 폭력의 수준이 낮은 좀 더 건강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점을 많은 사례가 증명하고 있다는 점을 확신해야 한다. 이런 연관성은 결코 불가사의한 어떤 것이 아니다. 다만 오래전 인류가 알고 있었던 것을 다시 이야기할 뿐이다. 그것은 인류의 행복을 위한 사회적 환경의 중요한 측면이 바로 자유, 평등, 우애라는 것이다."
- 리처드 윌킨슨 Richard G. Wilkison, 김홍수영 역, <평등해야 건강하다 The Impact of Inequality>, 2005. (한국어판 : 후마니타스, 2008)

윌킨슨은 이 책에서 물질적 평등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상호 호혜적 관계, 사회적 연결망 및 지지체계의 구축, 노동의 자율성 등이 필요하며, 한 사회 안에서의 상대적 불평등 - 무시당하기, 지위가 높음을 증명하기 위한 과대소비 - 도 인간이 받을 수 있는 큰 스트레스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여러가지 상대적 불평등을 강조한다고 해서 그가 '물질적 평등'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물질적 평등이 필수조건이 되어야 이러한 나머지 조건들이 충분히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가 제시한 여러가지 해결책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각각의 조건에서 조금 더 나은 방법만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분석 결과인 '평등을 이뤄야 사람들이 건강해진다'라는 것은 이제 분명한 사실로써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누구인가. 윌킨슨만이 제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 같이 생각하여 어떻게 세상을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를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공부하면서 찾아내야 할 것이다.

by 박군 | 2009/12/03 15:44 | review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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